파레토 최적
1906년 파레토는 그의 저서 <정치경제 교본(Mannual of Political Economy)>을 간행하면서 왈라스가 다루지 못했던 부분을 규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소비자의 욕구와 노동 및 원자재의 공급이 가격체계를 통하여 조화되는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파레토는 시장전체의 균형을 가져 오는 가격 세트의 존속가능성을 탐구한 왈라스 이상의 심도 있는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왈라스의 일반균형 체제가 만족된 상태에서도 배분 결과에 따라 어떤 사람의 효용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 좋아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어떤 경제적 배분결과가 더 바람직스러운지 또는 선호할 수 있는지를 누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독재체제가 아니라면 어느 결과를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이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벤담(Jeremy Bentham)과 같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난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벤담의 ‘행위의 쾌락계산법(hedonistic calculus)’에 의하면 각 개인의 효용은 동등하게 합산된다. 즉 각 개인의 효용을 산술적으로 합한 것이 사회전체의 효용이다. 정부의 책무는 사회 전체 효용의 극대화이다. 이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들리나 현실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는 어떻게 효용을 측정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설령 효용을 측정할 수 있다 해도 또 다른 문제는 없을까? 어떤 사람은 낙관적이고 쾌활한데 반해서 어떤 사람은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사회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쾌활하고 낙관적인 사람에게 돈을 주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낙관적인 사람이 더 많은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법이 과연 정의로운가?
파레토는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만약 A라는 상황과 B라는 상황을 비교하는 경우에 A의 상황에서 B의 상황으로 바뀌었을 때 아무도 나빠지지 않고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은 좋아진다면 B의 상황을 A의 상황보다 선호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할 것으로 파레토는 간주했다. 예를 들어 보자. A의 상황은 갑이 시간 당 500원을 받고 을은 시간 당 1,000원을 받는 경우이다. B의 상황은 갑이 시간 당 750원을 받고 을은 시간 당 1,000원을 받는 경우이다. 파레토에 의하면 상황 B는 상황 A보다 우월하다. 왜냐하면 을에게는 손해 없이 갑은 250원이나 더 받기 때문이다.
근대 경제학자들은 상황 A에서 상황 B로의 전환을 파레토 개선(Pareto improvement)이라 하고, 더 이상 파레토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결과를 파레토 효율적(Pareto-efficient) 또는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이라고 한다. 즉 파레토 최적은 다른 사람이 불리해지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유리해질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위의 예에서 갑은 시간 당 800원을 받는 반면에 을은 975원을 받는 경우를 C의 상황이라고 하자. 상황 C는 상황 B에 비해 갑은 50원을 더 받으므로 갑에게는 유리한 상황인 반면에 을은 25원을 덜 받으므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상황 B에서 상황 C로의 이동은 파레토 개선이 아니다.
파레토 최적은 만족스러운 경제적 결과를 성취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 간주될 수 있다. 파레토 최적은 서로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긍정적인 상태이지만 그 이상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파레토 최적인 결과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앞의 예에서 갑이 시간 당 500원을 받고 을은 시간 당 1,000원을 받는 상황에서 갑과 을 모두의 임금이 인상되면 이는 파레토 개선이다. 그러나 만약 갑은 100원이 인상되고 을은 10원이 인상되는 상황과 갑은 10원 인상되고 을이 100원 인상되는 상황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파레토 최적은 그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파레토 최적은 또 다른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빌 게이츠가 세계 전체 부의 99%를 소유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1%를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 있다면 이것은 파레토 최적일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빌 게이츠가 자신의 재산에서 100 달러를 노숙자에게 주었다면 적어도 빌 게이츠는 100 달러의 손실을 보았으므로 이러한 재분배는 파레토 개선이라고 할 수 없다. 즉 파레토 기준은 분배의 형평성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파레토 기준을 정책으로 실행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인도 출신의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버드 대학교의 센(Amartya Sen)교수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부유층의 쾌락을 줄이지 않고는 굶주린 사람들의 삶이 개선될 수가 없는 상태에서는 몇 사람은 호사스러움의 극치 속에서 살고 나머지 사람들은 가난에 찌들어 사는 세상도 파레토 효율적이다. 한 마디로 얘기한다면 완전히 혐오스러운 상태라 할지라도 그 사회나 경제는 파레토 최적이다.”
그러나 파레토 효율성은 내재된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용한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다. 다음의 경우를 살펴보자. A의 상황은 갑이 시간 당 500원을 받고 을은 시간 당 1,000원을 받는다. B의 상황은 갑이 시간 당 750원을 받고 을은 시간 당 1,000원을 받는 경우이다. 이제 갑과 을은 함께 모여 상황 A에서 상황 B로의 전환에 대해 협의하기 시작했다. 만약 을이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을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 상황 전환에 대해 별로 마음내켜하지 않는다. 그러나 갑은 250원이나 더 받을 수 있으므로 상황 전환이 절실하다. 이에 따라 갑이 을에게 자신이 더 받는 250원 중에서 100원을 떼서 주기로 제안한다면 을은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여 상황 B로 전환하는데 동의할 것이다.
자유시장의 최대의 장점은 바로 이렇게 상호 이익이 되는 거래가 성립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파레토 이후에 애로(Kenneth J. Arrow)나 드브뢰(Gerald Debreu) 같은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상호 이익이 되는 거래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즉 이들은 모든 자유로운 시장의 결과인 일반균형이 파레토 최적이라는 점을 정교한 수학적 모델을 통하여 증명했다. 이러한 주장을 ‘후생경제학의 제1정리(the first theorem of welfare economics)’라고 한다. 수학적 증명은 매우 난해하므로 이를 다음과 같이 직관적으로 설명해 보자.
나는 6개의 사과를 가지고 있고 상대방은 6개의 오렌지를 가지고 있다(최초의 부존점). 두 사람 모두 과일을 좋아한다. 상대방은 사과로부터 얻는 만족도가 오렌지로부터 얻는 만족도의 2배이고, 나는 사과와 오렌지에서 얻는 만족도가 동일하다. 상대방이 자신이 보유한 오렌지를 내가 보유한 사과와 교환하기를 원한다. 이 때 문제는 몇 개를 교환하느냐이다. 나에게 소비에 있어서 사과나 오렌지는 차이가 없으므로 상대방이 6개의 오렌지를 사과로 교환하자고 제안하면 내 효용은 전과 동일한 반면에 상대방의 만족도는 2배로 증가한다. 이 경우 상대방이 제안한 교환은 파레토 개선을 가져온다. 나는 대안으로 내가 보유한 사과 가운데 3개를 상대방의 오렌지 6개와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경우에 상대방은 교환 이전의 효용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나의 효용수준은 종전에 비해 1.5배 증가한다. 나의 제안도 파레토 개선을 가져온다. 이러한 교환으로 파레토 개선은 가능하지만 첫 번째 상대방의 제안은 내가 거부할 수 있고, 두 번째 나의 제안은 상대방이 거부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이 사는 동네에 농산물 직거래장이 있고, 그 곳에서 형성된 가격은 사과가 1,500원이고 오렌지가 1,000원이다. 시장의 균형가격 형성이 두 사람의 거래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상대방이 자신이 보유한 6개의 오렌지를 시장에서 팔면 6,000원의 수입을 얻고, 이 수입으로 사과를 사면 4개를 살 수 있다. 4개의 사과는 8단위의 효용을 얻게 되는 셈이고, 1단위의 효용을 1,000원으로 책정하면 8,000원에 해당하는 효용을 얻는다. 만약 상대방이 교환에 응하지 않고 자신이 보유한 6개의 오렌지를 소비했다면 이는 6,000원의 효용에 해당되므로 상대방은 교환을 통하여 2,000원에 해당하는 효용을 더 얻게 된 것이다. 나는 보유한 6개의 사과 가운데 4개의 사과를 6개의 오렌지와 교환했으므로 내가 소비할 수 있는 과일은 2개의 사과와 6개의 오렌지이다. 나에게 사과와 오렌지는 무차별하므로 내가 얻는 효용은 8단위이고, 돈으로 환산한다면 8,000원이다. 이러한 효용 수준은 내가 교환에 응하지 않고 보유한 6개의 사과를 소비했을 경우에 얻는 효용수준 6단위보다 높다.
결국 경쟁적인 시장에서 형성된 균형가격이 파레토 효율성을 보장한 것이다. 근본적 시장주의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자유시장이야 말로 어떤 다른 형태의 체제보다 우수함을 보여주는 이론적 근거라고 간주하고 정부 간섭의 부당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확대 해석된 것이다. 위의 이론이 주장하는 것은 특정한 전제 하에서 시장이 최소한의 효율성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특정한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에 발생하는 시장 실패(market failure)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참고문헌 : John Cassidy, [How Markets Fail], (FSG, 2009). 김철환(아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뒤늦은 지식쌓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욕시티에 산다는 건 (0) | 2023.10.15 |
---|---|
베르누이 효용이론 (0) | 2023.06.25 |
심리적 한계와 인지 오류 (0) | 2023.06.25 |